뒤돌아보니, 멈춰있었다.

하루는 어쩌다보니 과거의 이메일 자료들을 뒤지게 되었다. 첨부파일이 살아있는 것을 보니 내가 따로 저장을 했던건가? 첨부되어있는 과거의 나 자신이 쓴 글들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어 이렇게 공유해보려고 한다. 밑의 글은 학사2년 당시 ‘보이지않는 차원’ 이란 책을 읽고 내가 작성했던 레포트이다. 한번 살펴보자!!
보이지 않는 차원.
책의 제목대로 차원이라는 단어는 내게 정말 보이지 않는 피상적인 그런 단어인지도 모른다. 차원이란 단어는 어릴 때부터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지만 나는 차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특히 공간에 대하여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책의 중심 논제는 사회적, 개인적 공간을 인간이 어떻게 지각하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지각을 다루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잘 만 이용하면 내 의도에 맞게 사람을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내 안에 있다.
저자는 언어는 사상을 형성하는 하나의 중요요소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언어를 떠나서 신앙이나 철학의 체계를 논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나라별로 혹은 민족별로 나눠진 언어에 의해 분리되는 사상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철학적, 종교적인 측면에서 생각의 나눔을 막는다는 것인가? 만약에 진짜로 그러하다면 성경의 창세기 11장에 언급된 바벨탑 사건에서 교만한 인간들의 건축을 막으려 그들의 언어를 분리한 신의 의도가 이해되는 것만 같다.
저자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건축물이나 도시라는 환경 역시 이렇게 언어로서 분리된 사고의 틀로부터 파생되어 생성된 각 나라의 문화에 따른 선택 스크린을 통해 여과되는 과정의 표현이라고 나타내고 있다. 계속해서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성된 환경에 인간이 어떻게 자각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연장물로서 확장시킨 유일한 동물이다. 눈을 망원경으로 귀를 청진기로 확장시키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보완해나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 본연의 동물적 특성에 대해 무시하고 있을 수도 있다. 책의 저자는 동물들로부터 살펴본 공간의 자각과 사회적 행동을 인간에게까지 연장시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동물은 공간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도주거리, 임계거리, 개체거리, 사회거리 라는 공간거리 유지장치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이 장치에 따라 개체수를 조절하기도 하고 다양한 행동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만약에 개체수 과잉으로 인한 혼잡이 발생하면 부신피질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부신이 비대해지도 이것은 저혈당성 쇼크로서 작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방식들로 하여금 혼잡에 따른 개체수의 저감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칼훈의 노르웨이 쥐 실험으로서 알아볼 수 있는데 혼잡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분열시키고, 그 결과 무질서에 이르게 되며 결국에는 개체군의 붕괴나 대규모적인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결과를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동아리를 하다보면 지체라고 부르는 내가 전담하는 새내기들이 있다. 그들이 심리적으로 어려워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까이 다가가 케어하는것도 방법이지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지나친 접근으로 심리적으로 변동되는 사람의 공간거리를 침해하게 되면 오히려 역으로 그 사람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나라별, 문화별로 달라지는 사람들의 감각사용의 정도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랍쪽 문화권의 사람들은 촉각과 후각을 많이 사용하지만 미국인들은 시각을 주로 사용한다던가 하는 것이다. 난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설계가 참 쉽지 않은 길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는 문화별대로 나눠지는 사람들의 공간인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사실 더욱 나아가서 사람 개개인의 공간에 대한 특성이나 기호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복합적인 것들을 고려하여 설계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머리 아픈 일인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이 다가 아니라 실용적인 편리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 어려운 것다.
이번학기 단독주택 설계에서도 나는 건축물의 왼쪽 매스는 개인생활 공간이었지만 오른쪽은 갤러리로서 공용시설에 해당하였다. 원래는 갤러리도 개인공간으로 쓰려하였지만 너무 사치스럽지 않느냐는 교수님의 말씀에 공용공간으로 바꾸게 되면서 많은 것들을 수정해야 했다. 공용공간이 되어 여러 사람이 이용한다고 생각하니 원래의 복도는 너무나도 좁았다. 책에서 나오듯 사람들의 개체거리가 어느정도 보장되어야 이용자들이 타인의 접근으로서 오는 불쾌감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설정한 복도는 사람들간의 핫번킹을 유발할만한 비좁은 공간이었다. 또한 갤러리는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내가 그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나는 아무 방해 없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사회거리 로서 먼사회거리 즉 2.1m~ 3.6m 정도의 거리의 프럭시믹스가 사람을 격리시키며 차단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 정도 거리가 있어야 다른 사람 앞에서 일을 계속해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이번 설계에 적용했다면 어떠했을까? 나는 분명 3m나 되는 거리의 거대함으로 공간설정의 비좁음으로 계속 고민했을 것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설계를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박선규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그런것들을 고려할 수 있어야 좋은 건축가 일 것이다.
책은 더 나아가서 감각을 활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건축에 있어서 시각은 그렇다 쳐도 촉감을 활용하고 있는가? 촉감의 활용이란 매우 우연적인 것이거나 파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나는 이게 틈새시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미 나올건 다 나온 것 같은 건축zone에서 경쟁력을 갖출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지금까지 우연에 기인해왔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풀어내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러기위해서는 감각에 대한 많은 공부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감각에 대하여서는 나라별로 문화별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공간의 적응방식, 장소를 이동하는 방식, 길을 가르쳐주는 방법에서 나타난다.
언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이 책의 주장대로 언어가 사상을 주도한다는 증거가 하나더 등장하는데 바로 북아리조나의 인디언 언어 “호피어” 이다. 호피어는 시간과 공간이 상호불가분의 관계로 되어있다. 호피족의 사고 체계는 상상적 공간이 없다는 이야긴데 그래서 호피족은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 있어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건축에 있어서도 공간의 가정이 우리의 관점에서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다. 그것이 호피족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는 인구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의 현실세계는 여러 가지 복잡한 도시문제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자신도 모르게 거리나 공간감을 의식밖에서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개념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이것을 캐치하여 학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내가 건축기술역사 시간에 꿈발표로서 이야기한 내용도 여기와 연결되어진다. 의도적인 공간창출로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행동양상으로 유도하는 것, 그것은 분명 그들의 공간의 지각방식을 세밀하게 터치함으로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언어로서 구분되는 문화에 따른 세밀한 의도로서 계획된 건축이 그 정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은 인간과 집, 도시, 기술, 언어들과의 상호관계로 보아 우리들이 이러한 연장물을 어ᄄᅠᇂ게 창조하고 있는가를 좀 더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문화는 인간 신경체계의 뿌리에까지 침투하여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우리는 그 문화로부터 무의식적 습관으로서 연장물을 다루고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아는 것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문화를 알아갈 필요가 있어졌다. 우리가 그러한 태도로 나아갈 때 좀더 의도적이고 바람직한 인간의 연장물들이 세상에 등장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의 글로부터 느낀 것은 3가지이다.
- 대학생의 치기
- 종교적인 몰입
- 문화와 행태에 대한 관심
이메일에 있던 그 당시의 메모(일기)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지금 건축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아는 것이 진정한 건축인 것인가? 그리고 우리 건축이란 무엇인가? 나를 포함한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서양건축을 주로 배우고 있다. 그렇기에 건축의 의미와 가치가 서구적 논리로 채워진다. 해석의 방법론과 가치의 기준이 남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제것의 본질을 추구하는 방향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건축에 다가서는 일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건축은 개념, 배치, 형태, 용도, 기능, 공간, 영역, 장소, 설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완성된다. 우리건축의 본질적인 가치는 건축이 지어진 그때의 일상을 재구성해서 건축이 행해지는 과정을 되집어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알 수 있다면 그것을 오늘날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건축의 특징을 발견하고 이유를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건축을 구성해야한다.
과거를 되짚어 보았을 때 그 당시의 나는 한국건축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서구건축에 초점이 맞춰진 한국 건축교육에 대한 반발심이 강했던 시기를 보냈던것 같다.
언어와 문화는 사람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그렇기에 어떠한 시대와 문화에 노출되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라도 다르게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한국건축의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고 느낀 것 같고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들도 한국인의 초점에서 떨어져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던 흔적들이 보인다.

나의 군복무시절 가장 기억나는 책을 두가지 이야기 하자면 ‘총균쇠’, ‘어쩌다 한국인’이다.
어쩌다 한국인은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한국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해석해보고 있는 책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 주체성
- 가족확장성
- 관계주의
- 심정중심주의
- 복합유연성
- 불확실성 회피
이번 포스팅은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는 건 아니고 만약 이 책이 궁금하다면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otc4841&logNo=221516351132 이 링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군대에서도 위 생각의 연장선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파악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정체성에 맞는 우리건축에 대해서 고민하던 흔적들이 이메일 곳곳에 남아있었다. 현재의 나와는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그 공간이 그저 아름다운 것, 보기에 좋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고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고민하던 과거가 어느순간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금 되잡아 보고자 한다.
또 다른 이메일 자료이다
형상화 설명: 저는 꿈발표로서 건축심리학을 공부해 보고싶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에 기본이 되는 독서를 형상화 주제로 정하였고 계획적인 독서계획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매달 한번씩 건축 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겠다.
날짜 | 책제목 |
2017년 12월 1일~ 2017년 12월 31일 |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에스더 M. 스턴버그) |
2018년 1월 1일~ 2018년 1월 3일 |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콜린 엘라드) |
2018년 2월 1일~ 2018년 2월 28일 | 건축 디자인 심리학 (소림중순) |
2018년 3월 1일~ 2018년 3월 31일 | 헤드스페이스- 영혼을 위한 건축 (폴 키드웰) |
2018년 4월 1일~ 2018년 4월 30일 | 철학이 있는 건축 (양용기) |
2018년 5월 1일~ 2018년 5월 31일 | 환경심리학 (Paul A.B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