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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프로젝트(독서)

구마겐고, 건축을 말하다.(구마겐고 시리즈 두번째)

 

시작하면서

‘구마겐고, 건축을 말하다’는 저번의 ‘나의 모든일’과 같은 구마겐고의 자서전 이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건축가의 생애나 그 사람의 건축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축대가들의 건축논리는 몹시 추상적인데다가 전달하는 방식 또한, 당사자가 아닌 다른 학자들에 의해 분석되어지고 전달되어서인지 내게는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구마겐고의 책을 읽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매우 직접적이게 다가오는데다가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 이유는 책의 구성에서 드러나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해가 담겨있음은 물론 그가 직접 이야기를 해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e-book을 정기구독하고 있는 입장에서 e-book으로 나와있는 건축책들이 그다지 많지않다. 그래도 구마겐고의 책이 있어 다행이었고, 쉽게다가갈수 있었다. 출퇴근길 아니면  어느순간이라도 구마겐고의 삶의 이야기를 간편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책을 추천한다.

주제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구마겐고의 흙, 물, 빛 , 바람이다. 구마겐고는 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물과 풀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는 존재 자체가 그대까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다. 실제로 살아서 활동하는 것은 작은 나뭇가지나 나뭇잎이라는 한정된 부분이며, 나무의 대부분은 그 활동의 흔적,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나무의 줄기를 구성하는 리그닌lignin이라는 물질이다.

 

구마는 나이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친구들과 놀러갔을 때 밤에 퀴즈를 풀다가 나이테에 대한 문제가 나왔었다, 나이태는 나무의 주변환경이 변화할때마다 더욱 선명히 세겨진다. 나이테가 나무의 과거이며 일기인 것이다. 구마는 책을 쓰게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나를 나무에 비교할 경우, 나에게 흙, 물, 빛, 바람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흙, 물, 빛, 바람) 기억해내는 단서는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의 제목은 장소의 이름을 사용했다. 연대순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순으로 기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구마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의 책들은 흔적, 즉 서 있는 나무의 모습에 관하여 글을 썼다면 이 책은 나무를 키워준 흙, 물, 빛, 바람이 주역이며, 그것이 눈에 보이는 나무의 모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구마겐고 나무의 생장일기를 살펴보자.
 
 

흐름

먼저 책의 플롯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서 이야기 해주고 싶다. 구마는 연대순으로 기술하지 않고 장소순으로 기술했다고 이야기하지만 큰 흐름에서 나는 이책이 현재에서 과거로 뻗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 구마의 건축 개념, 관계성
 
- 개념과 관계성을 실현시키는 건축 도구(라이브러리)를 갖게된 배경
 
- 개념과 건축도구를 채택하게된 구마 본인의 성장배경
 
 
이 흐름을 벗어나는 단락도 분명 존재하지만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는 전개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흐름은 어찌보면 익숙한데 학사 5학년 초창기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교수님들께서 접근하신 방식과 그 방식으로 하여금 내가 생각하게되었던 것들과 유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 지금까지 만들었던 프로젝트에서 공통적 개념 찾아내기
 
-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공통적 라이브러리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다이어그램 작성
 
- 나는 왜 이러한 건축을 했을까에 대한 자아성찰
 
 
아무튼 플롯을 참고하고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더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목차

 

인상적인 부분들

· 건축개념

1) 굴, 다리
구마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진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구마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진행해오던 수많은 건축속에서 굴이라는 공통적 개념을 찾아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굴 같은 건축이란 어떤 것일까?

 

굴은 체험하는 장소, 현상학적 존재인 것 이상으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한다. 굴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굴 저편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며 굴은 그곳까지 뚫려 있다. 저쪽에 있는 것과 이쪽에 있는 것을 연결하는 것이 굴이다. 굴은 또 좌우를 연결하기도 한다. 왼쪽에 있는 공간과 오른쪽에 있는 공간이 굴을 매개체로 삼아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굴은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겹겹이 연결한다. 굴은 동굴처럼 닫힌 것이 아니라 공동성을 환기시키는, 밝고 열려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이 이번 책은 나이테와 같이 최근의 경험들과 연결되어지는 부분이 많아 더욱 재미가 있었다. 나는 최근 ‘활옥동굴’이라는 굴에 다녀왔다. 과거에는 옥을 캐는 거대한 굴이자 지금은 피서지로 개발되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굴안에는 다양한 공간들이 있었는데. 동굴 호수에서 카누를 타는 장소가 있는가 하며, 와인을 숙성시키는 장소, 고추냉이같은 식물을 재배하는 장소, 다양한 오락기들이 있는 게임장같은 곳도 있었다. 굴은 폐쇄되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공동성을 내포한 공간이었다. 책에선 구마의 엣추억을 통해 굴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두운 연못 바닥에 낚싯줄을 늘어뜨리면 어지간해서는 바닥까지 닿지 않는다. 그 신기할 정도로 깊은 연못 바닥에서 새빨간 가재를 낚아 올렸다. 동굴과 연못 속에 사는 생물들을 꾀어내고 싸우는 그 놀이는 논두렁에서 가재를 찾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이었다....

 


우리는 굴을 통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연못에서 가재를 낚아내는 것처럼 굴이 연결한 새로운 공간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 마치 활옥동굴에서 저편으로 연결된 다른 활옥동굴의 공간들을 갔을때의 즐거움처럼 말이다.
하이데거가 ‘건축한다, 생활한다, 사고한다’라는 강연(1951)에서 말한 “건축은 다리다.”라는 정의에서도 건축의 공동성을 찾아볼수 있다. 여러 사람, 이질적인 사람들과의 공동 협력이 없으면 건축물은 지어질 수 없다. 이처럼 건축이란 공동성을 전재로 하며, 굴이자 다리라는 구마의 말에 나는 크게 공감했었던 것 같다.
 

활옥동굴

 

· 라이브러리

1) 바닥
구마는 바닥과 건축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바닥을 통하여 대지라는 자연과 직접 연결된다. 신체가 벽이나 천장에 접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바닥에는 늘 접촉한 채로 생활한다. 건축물의 바닥을 인공적인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바닥을 지면 그 자체로 만들고 싶었다.

 

구마는 결정적인 인간의 숙명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줄 정도로 강하고 튼튼한 바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나스역사 탐방관의 내부와 외부의 바닥을 완전히 평평하게 하여 연결시키고 그 사이에 유리를 박아넣었는데, 그러기위해 유리를 고정하는 틀을 지면에 파묻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시도는 20세기 공업화 사회의 흐름속의 건축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는 실행했다. 구마는 바닥을 통해 바닥에 발을 디디는 자신이 세상과의 관계성이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신체와 세상과의 관계성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2) 대숲
 구마는 모더니즘을 이야기하면서 고딕양식을 언급한다. 그가 말하길 섬세하고 작은 유닛을 조합시켜 짓는 고딕 양식의 교회는 ‘숲’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숲과 같은 건축이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건축 모델 중 하나라 말하는데, ‘대나무집’을 건축할 때도 대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거기에 대숲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대나무를 이용했다. 이 대나무집에서는 구마의 다양한 라이브러리들이 활용된 것을 옅볼수 있다.
 
- 내부의 바닥이 다양하게 바뀌기 때문에 마치 대숲을 오르거나 미끄러져 내려가는 듯한 무중력감이 있다.
 
- ‘’이라고 부르는 부분에는 물이 깔려 있어서 커다란 대나무 상자 안에 보다 작은 대나무 상자가 떠 있는 듯한 구조다.
 
- 대나무를 겹치고 포개서 공간에 습기가 발생하게 함으로써 대 같은 분위기를 탄생시켰다.
 
 
3) 나무쌓기+치도리 그리고 틈새

 

콘크리트는 재사용할 수 없는 재료다. 처음에는 물처럼 형체가 없지만 일단 굳어버리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무겁고 단단한 존재가 되어 절대로 재사용을 할 수 없다. 반면 목조건축은 나무 쌓기와 비슷하다. 물론 나무 쌓기 정도로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편안한 여유로움이 있다.

 

서니힐스 재팬

 

구마는 목조건축을 데모크래틱(민주주의적)하다고 이야기하고, 콘크리트는 반데모크라시 재료라고 이야기한다. 언제든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편안한 여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재사용이 불가능 하고 증개축이 어려운 콘크리트의 전체주의적 성격에 저항하는 나무 쌓기의 나무조각들이 점차 진화한 결과과 바로 ‘치도리’ 이다.
치도리는 ‘수많은 새’ 라는 뜻이다. 작은 단편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구마의 건축에는 치도리 시스템이 많이 보인다. 단순히 체크 패턴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면이 보다 가볍게 느껴져, 시청 같은 커다란 공공 건축에도 새가 날고 있는 것 같은 경쾌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마는 치도리의 효과를 치도리를 치도리답게 만드는 ‘틈새의 힘’에 있다고 생각했다. 틈새가 없으면 인간은 질식해버린다. 루버 또한 틈새가 중요한 포인트이다. 일본의 건축과 일본 사회의 틈이 지나치게 없는 완벽주의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틈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에셔의 하늘과 물1

4) 저렴함

 

‘저렴함’은 자신과 세상이 쓸데없는 장식이나 매개체 없이, 낭비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낭비가 없는 그 저렴함이 아름다움과 연결된다. 단기적으로 저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긴 안목으로 볼 때 저렴하게 끝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모더니즘의 저렴함은 공업화 사회에서의 저렴함이었다는 데에 주의해야 한다.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해 낮은 가격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공업화 사회의 저렴함, 20세기적 저렴함이다. 르코르뷔지에나 미스가 추구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종류의 저렴함이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탈공업화 사회의 저렴함이다.

 
 
5) 그 외의 것들
 이외에도 샤오싱주, 빛천장, 패브릭등 많은 라이브러리들이 이야기 되지만, 내가 느끼기엔 앞서 언급했던 요소들로 하여금 구마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들의 반복되는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전부 다 언급하기에는 글이 난해해질 우려가 있기에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혹시 구마의 라이브러리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 배경

구마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그의 건축적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야기 해 주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하나 연결지어 보는 것은 다른 독자들에게 양보하겠다. 그 대신 그의 인생속에서 의미있게 다가오는 몇가지를 추려보았다.
 
1) 사상적 토대
나는 구마겐고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시대로부터 형성된 존재이다. 구마는 책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하며 자신이라는 사람이 왜 이러한 건축가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듯 하다.
그는 에이코가쿠엔이라는 가톨릭의 일파이며 엄격한 규율과 교육 방식으로 유명한 예수회가 담당하고있는 중·고등학교 나왔다. 교사는 전세계에서 온 선교사들이었고 자연스래 외국인들에 대한 저항감이 사라졌다고 한다. 도한 에이코가쿠엔에서 행해지는 ‘신체’를 기본으로 삼는 교육방식으로 인해 관념적인 건축가가 아닌 ‘신체파’ 건축가가 되게 되었다. 구마는 르꼬르뷔지에나 미스를 언급한다.

 

 모더니즘 건축의 리더였던 르코르뷔지에는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가장 계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칼뱅파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간생략)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가 모더니즘 건축의 비장식적이고 금욕적인 디자인의 토대가 되었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건축대가들의 어렸을적 사상적, 종교적 몰입이, 그들의 건축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나 또한 종교적으로 몰입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 기점이 지금의 건축적 생각의 토대 정도로는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저번에 게시한 ‘2017년처럼 살기‘ 라는 글에 나타나있고, 이 책과 연결되어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이 몹시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2) 경험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의 일본관

 

과거를 돌아보자면 아돌프 로스 Adolf Loos41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젊은 시절에 만국박람회 체험을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의 그의 체험이 없었다면 모더니즘 건축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로스와 라이트라는 두 건축가의 모더니즘을 형성한 주역은 만국박람회였다.
 
‘반건축’이나 ‘세포 건축’의 힌트를 얻은 것은 오사카 만국박람회다.(구마 본인의 이야기)
 
스위스관은 그런 이기적인 상자를 해체하는 시도였다. 밝고 통풍이 좋아 그 나무 아래에 서 있는 것만으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파빌리온 비판이라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건축에 대한 비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만난 최초의 ‘반反건축’이었다. (중간생략) 둘 다 형체가 없고
자연과 체험만이 존재하는 상태를 지향했는데, 이는 스위스관에서 ‘ 반건축’에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마는 내게 계속해서 경험에 대한 강조를 하는듯 했다.  많은 것을 보고 직접 경험할 때 세상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독서나 건축 시사에는 관심이 있는 편이었지만 여행이나 전시, 박람회등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 하지만 구마의 이야기로 큰 교훈을 얻을 슈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고 건축적 힌트를 얻기위해선 많이 보아야 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인지되었다. 앞으로도 블로그 활동을 빌미로라도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우선할수 있는 태도를 보이고자 한다.
 
 
3) 스스로 해야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구마의 대학원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대학원 연구실이었던 하라 히로시의 연구실은 교수가 학생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교수도, 선배도 없는 연구실은 정말 적막하고 조용했고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또한 그 무엇도 가르쳐주지 않는 공백의 장소였다.
하지만 구마는 그게 좋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해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위에서 압력이 내려오고 그 압력에 짓눌려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저항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압력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좋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 활동은 내게 너무나도 의미있는 일이다. 스스로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내가 스스로 하고 스스로 깨닫고, 내 인생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이 블로그 활동을 통해 길러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책의 주석이후의 맺는 말을 공유하고 싶다. 무척이나 인상깊다.


 

건축가는 작품 수만큼 분쇄된 존재다. ‘가부키자’를 설계할 때에는 에도시대 쪽을 바라보고 일을 했고 탄소섬유carbon fiber를 소재로 미술관을 지을 때에는 100년 이후의 시대를 생각했다. 도호쿠 부흥 프로젝트를 위해 재난 지역을 돌아볼 때에는 나 자신이 쓰나미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지 않고는 이재민들이 원하는 거리를 만들 수 없었다. 한편, 파리 시의 의뢰로 파리에서 노숙자 수용시설을 디자인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일본의 노숙자와는 세계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건물을 짓는 사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그 주변의 사람, 다양한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지 않고는 좋은 건축을 설계할 수 없다. 상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으로 이동하면서 분쇄되어간다....
그러나 그 잘게 분쇄된 ‘구마 겐고들’ 안에 무엇인가 공통적인 것이 흐르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을 찾는 것이 이 책의 목표로 떠올랐다....

 

 

우리 또한 건축을 하며 수없이 분쇄될 존재들이다. 다양한 요구와 상황에 맞는 설계를 하기위해서 건축가 자신이 마치 배우처럼 자신을 다채롭게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 변화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으려 시도했고, 결국 찾아낸다면 그것이 나라는 나무의 나이테이자 본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