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내게 너무나 익숙하다. 회사근처라 일주일에 5번은 무조건 가게되는 장소이다. 인사동의 주말전경은 평일과 크게 다르지않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차 있다. 내게 넘치는 사람들은 서울살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인사동의 한국적인 정취와 어우러진 인파는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드로잉은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다. 가지지 못한 능력이라서 그런가, 학창시절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이미지로 표현하고자하는 바를 생산해내는 능력이 너무나도 부럽게 느껴진다. 건축가들의 드로잉은 그런 이유로 나에게 설램과 기대를 품게한다. 그들의 건축적 심상이 어떤식으로 이미지에 녹아날지 무척이나 궁금할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인사동의 어느 골목에서 건축가들의 드로잉전시를 본다. 그 현장에서 내가 느낀것들을 한번 나눠보겠다.
전시소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25명이 참여해 건축 작업이 아닌 조형적 작업으로서의 드로잉을 선보인다. 설계 드로잉이나 작업 결과물을 보여주는 전시는 많지만 여러 건축가의 예술적 드로잉만을 모은 전시를 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전시 장소인 토포하우스는 건축가이자 건축이론가인 정진국 한양대교수 명예교수의 작품으로 건축가가 설계한 특별한 공간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 건축가들이 한데 모여 드로잉전을 연다는 점에서 전시의 의미를 더한다.
참여건축가
전시에 참가하는 건축가는 곽데오도르, 곽희수, 구영민, 김동진, 김석환, 김효영, 문훈, 박기준, 박준호, 방철린, 백문기, 오섬훈, 오호근, 우경국, 이관직, 이은석, 이형재, 임지택, 임진우, 임형남, 전이서, 전인호, 최두남, 최성희, 홍재승 등 25명이다. 각 건축가별로 2~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소개1
전시는 토포하우스의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에서 열렸다.
큰 규모의 전시장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방식의 표현기법이 보인다.
인상적이었던 작품, 작품소개글을 나눠보고자 한다.
<이형재, 대동강의 겨울밤>
코너에 배치된 이 그림은 강 너머에서 바라본 도시의 품경을 담는듯하다.
의미에 대한것보다도 캠버스위 얹어진 매스 하나하나의 형상이 그저 물감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입체적으로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오호근, Way Finding>
아크릴의 색감이 무척이나 도드라지는 작품이었다. 바닥과 기둥이 구분되는 부분에 아크릴물감을 두껍게 발라 입체감이 더욱 살아난다.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 사람은 무엇을 찾는중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임진우, 올림픽대로>
내가 현재 미술을 배우며, 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이러한 그림일 것이다. 이러한 어반드로잉과 옅게 입혀진 수채화 물감의 작품이 선사하는 감상이 있는데, 그 그림을 보는 자체로 그 장면이 마치 내 추억속에 있었던 것처럼 회상하게 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김동진, Urban Section>
이 작품은 정말 흥미롭다. 도시의 건물이 동물들로 이루어져있다. 그 동물들도 하나같이 투박한 선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이상하게 무슨 동물인지 알아볼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같이간 지인과 동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대의 세계모델중, 거대한 거북이 있고 그 등딱지 위에 4마리의 코끼리가 세계를 받치고 있는 개념이 있다. 작가는 그것을 차용한것일까? 세계에서 하나의 건축물로 범위가 축소되긴 했어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구영민, 드로델 006 역파노라마>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이 작가분처럼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이러한 작품을 만들기위해선 머리속에 3차원적인 구상이 자유롭게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2차원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학교를 다닐때 포트폴리오나 작품 패널을 이런식으로 만들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한번 시도라도 해볼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의 게으름과 안주했던 나의 자세는 생각할때마다 항상 후회로 다가오는것 같다.
< *작품명이 생각이안남 >
청색과 하얀색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이 작품은 기억하기로는 작가의 기억속의 장면들, 실제 존재하는 풍경, 그동안의 작가의 작품들에서 발최한 부분들의 모음이다.
도시라는 것은 이런것 같다. 내가 인식하고 기억하는 조각조각들이 한데 엮어져 있는 퀼트이불같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의 문맥이란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도시는 결국 개개인의 각기다른 문맥으로 인식되는 피사체이다.
나도 나중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나만의 도시를 누빔작업해보고 싶다.
작품소개2
이번에는 작품 이상으로 작가의 의식에 공감할수 있게해준 작품에 부수적으로 나타난 작품설명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 *작품명이 생각이 안남> 의 작품설명
건축 설계는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에서 팀작을 하면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온전한 나의 건축을 할 수는 없다. 건축은 혼자할수 없고 우리는 단체로써 설계에 임하게 된다.
그림은 자유롭다. 구축하기위한 설계의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워 나의 표현에 가장 가까울수 있는것이 드로잉이다. 과정속에서 소거될뻔한 모든 작업들은 드로잉으로서 존재할 가능성을 부여받게되고, 드로잉과 건축은 서로 보완하며 영향을 행사한다.
<박준호, Uncanny of society> 의 작품설명
건축 설계를 하면서 느끼는 마음이 공감된다.
내가 하는 건축은 과거의 그림자이고, 이미 있는 요소들의 조각모음에 불과하다. 그러한 조각들은 결국 옛것이고 그 시대가 담겨져있기에, 지금 또다시 나타나는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설계를 하면서 결국 숭고함을 담아야한다는 과거의 의무에 묶여있게된다.
나는 이 숭고함이 결국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기성의 '예술적이라고 느끼는 모든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했듯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이러한 '숭고함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 에서 벗어나 지금의 시대를 담는 약한것, 작은것, 사소한 것이라는 '디테일' 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면서
전시의 소개글에 보면 이러한 말이 나온다.
드로잉 작업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거나 공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관과 철학을 기호화된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건축가들의 기본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작가들의 작품도 있겠고, 내가 감상한 내용이 전혀 상관없는 소리일수도 있다.
처음에 전시를 볼 때, 지인에게 말했다. "아니, 설명이 없으면 어떻게 감상하란거야!" 그런데 감상이란 결국 관람자가 주체이니, 내가 느낀것이 결국 정답이 아닐까? 다만 나의 감상이 각각의 건축가들의 의식과 조금은 가까이 닿아있기를 소망한다.
글을 읽는 모든사람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하며 2월 8일까지이니 가려면 조금은 서둘러야 할것이다.
'보는 프로젝트(여행) > 건축 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대한민국 건축문화제_도시건축의 미래변환 (2) | 2023.12.17 |
---|---|
네옴 전시회(Discover NEOM: A New Future by Design) (3) | 2023.08.06 |
'건축가의 여정'을 보고 [프리츠커상 수상자 소토 무라(Souto de Moura)의 전시] (4) | 2023.07.21 |